STATEMENT 2007

2007. 5. 26. 1:00~5:00 PM, 영은미술관, Workshop에서 발표.
 
이 세계는 나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예전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 될 것이다. 작가인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세계가 수용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를 둘러싼 환경-사회, 문화, 자연적인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떤 시각 언어로써 그려낼 것인가가 곧 지금까지의 작업의 일관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실존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환경은 수용자의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각언어로 표현된다. 한 연못에서 다양한 식물이 자라듯이 같은 환경이더라도 그에 접근하는 저마다의 내면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된다. 결국 나의 작업들은 환경이 인간, 개인에게 수용되고 가시화되는 과정에 대한 다양한 방법의 채집된 풍경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 유학길에 올라 만 8년 동안 꾸준히 그려온 것은 <물>이라는 모티브로 표현된 일련의 작품들이다. 유학 초기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이 공존된 상태에서 물을 만지는 것은 좋아하지만 익사의 두려움을 항상 갖고 있던 나는 그 두 가지의 양면적 감성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소재로서 물을 선택했다. 푸른색이 주는 관조적인 색감과 한두 가지의 다른 형식이나 색채들을 첨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형식실험의 한 방법으로서, 일정한 형태는 없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에 의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모티브로서, 또한 내유외강의 이중적 특성의 물질로서, 무한의 깊이와 표면의 일렁임을 동시에 담고 있는 비유로서 자연의 한 요소인 <물>은 끊임없이 매혹적인 모티브였다.

<물>은 저항할 수 없는 외부세계를 표상한다고 할 때 그 세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는 나의 존재감을 처음엔 직접적인 인체를 그림으로써, 점차로 기하학적인 직선의 형태로 변화되면서 거대한 물의 세계와 단면의 직선적 세계가 공존하는 그림으로 변화된다. 작업의 이러한 과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변화된 것으로 나의 삶이 이 세계와 어떤 연관 고리를 갖는가에 따라 함께 변화되어 왔다. 같은 맥락에서 귀국이후 여러 사회적 상황과의 단절, 변화된 작업 환경, 뉴욕에서의 짧은 경험 등은 세계와 나와의 갈등에서 “나는 과연 이 세계에서 무엇을 느끼고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그래서 쌈지스페이스에서의 후반기 작업 이후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를 표현하는데 색채를 의식적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인간적인 감성을 표현한 수채화 연작, 매일 접하는 사물의 특성을 회색으로 표현한 Dailyscape 등은 그러한 과정을 위한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 연작은 그 과정 이후 나의 시각을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향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현실에 발을 딛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상상하는 판타지 연작이다. 신의 계곡, 소금사막, 라벤더 들판 등은 인터넷이나 영화, 문학작품 속의 상상의 세계였다. 상상이었기에 사물의 특성이나 장소의 구체적 실체는 나에게는 부연설명이었고 필요한 것은 그 색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였다. 이유는 바로 그 색채에서 그 공간을 느끼고 상상할 수 있었기에.

색채의 미묘한 차이를 보다 적절하게 드러내기 위해 아크릴 물감으로 대체하면서 화면의 견고성에 대한 부담을 덜었고 무엇보다 형태나 화면의 구성법 등 기본적인 회화의 표현기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색감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묘한 색채 하나하나를 뭉개거나 뒤섞지 않은 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색채로 그 색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한 채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로움, 그것이 어쩌면 나에게는 또 하나의 파라다이스이다. 그래서 각각의 색 자체는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테이핑과 물감 층의 밀림에 의한 경계처리는 그러한 개별적 특성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화면 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수평적 구조는 평등한 가치를 지닌 화면으로 구성하기 위한 선택이다.각 색채가 갖는 영역의 폭과 톤은 음악적 리듬을 갖도록 배치되며 개별적인 색들이 전체를 이루면서 하나의 화면으로 통합될 때 詩적 울림이 느껴질 수 있도록 조절된다. 그 사이 간혹 보이는 끊어진 색면들은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 리듬에 필연적인 우연을, 즉 한 줄기 빛의 무리, 검은 숲 사이 반짝이는 가는 나뭇가지나 빼곡한 잎 사이로 스미는 빛 줄기, 청명한 하늘가의 구름 한 조각 등, 자연이 보여주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우연을 표상한다. 거기엔 소재의 구체적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완전한 형태를 배재함으로써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게 그림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그 상상의 여지가 반드시 여백일 필요는 없다. 색으로 채워진 화면 안에는 보기에 따라서 진공의 상태, 또 다른 공간이 내재되어 있고 이는 관람자의 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눈 앞에 놓인 현실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색과 감성으로 수용된다. 또한 경험은 구체적 사실의 기반 위에 있지만, 축적된 경험, 기억 속의 추억은 구체성 보다는 추상적 색채와 느낌으로 남게 된다. 이는 나의 그림이 직관적으로 선택된 색채와 단순한 구조를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에서 출발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자신의경험, 회상, 추억, 환상 등을 부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의 풍경화이며 하나의 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지난 세오갤러리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현실 속에 숨겨진 혹은 놓쳐버린 파라다이스의 색채들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의 제목으로 “평등한 매력”을 설정했는데, 엘뤼아르의 시구에서 인용된 것으로 나의 작업의 중요한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나는 동등하다는 뜻의 독일어로 번역했다. A와 B의 관계가 어떤 수직적 위계질서나 권력구조가 아닌 동등한 가치를 지닌 독립된 개체라는 것으로 A와 B는 사람과 사람 사이일 수도 있고 사람과 동,식물, 등 모든 생명이 있는 것과의 상호관계_즉 그것의 수평적 구조를 의미한다. “매력“이라는 것은 색채가 주는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에 매료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의 색채가 다른 색채와 상호 조응하며 울리는 화음의 다양한 변주를 표현하고자 한다.

곧 엘뤼아르의 싯귀 속의 “평등한 매력”은 언제나 아침을 열어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나에 의해 인용된”평등한 매력”은 색채로 보여주는 평등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

2007 © 이 경

Related Exhibition

The fascination of equilibrium – Solo Exhibition, Youngeun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