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영은미술관 레지던시 워크숍 평론

하계훈(미술평론)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색띠를 캔버스 화면에 수평으로 배열해 나가는 화가 이경의 작품은 형식상의 유사성으로 인해 서양미술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색면추상이나 하드에지 추상회화 그룹의 작품들과의 연관성 등이 지적되기도 한다. 실제로 시각예술의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이경의 화면 속에서 상호 연관성을 유지하면서 화면에 직접적으로 분산 배치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작품의 추상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그림이 서양의 1950년대 말 기하학적 색면추상이나 하드에지 작가들의 작품과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우선 이경의 작품은 비록 색띠를 이용한 풍경과 심상의 표현이긴 하지만 작가 스스로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과 생활환경 등 구체적 대상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것을 추상이기보다는 어느 정도 재현적인 표현으로도 접근하고 있다는 작가의 의도를 읽어주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근대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인상파 이후 대상을 파악하는 시각의 확장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이럴경우 작가는 인상파 화가들이 외광파(外光派)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것처럼 소재와 묘사 대상이 어느 정도 한정되는 제한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제목을 <이른 아침>이나 <하얀 모래사막>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렇게함으로써 일반적인 추상작품이 주는 제목의 애매성을 조금이나마 제거시키고 좀 더 구체적인 장소성이나 상황묘사를 제공함으로써 관람자들의 시각적 체험 항로의 방향타 노릇을 하게 해준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색면추상 화가들이 추구하던 색채의 충돌효과나 보색에 의한 상호작용과 같은 순수 색채 중심의 시각적 자극보다는 우리 주변의 인상적인 풍경과 생활 주변의 사소한 서정적 내러티브를 직접적 표현을 자제하면서 화면에 적절하게 담아내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앞서 언급한 서양미술사상의 유파들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경은 자신의 생활반경 내에서 대상을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자신의 내부로부터 해석의 메카니즘 가동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포착한 대상의 분석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가는 무엇보다도 색채에 집중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다란 색띠들의 조합을 통한 색채의 변주는 한국 미술대학에서의 수련과 10년 가까운 독일에서의 조형훈련 과정을 통해 진화해 온 것이다. 이경의 초기작에서는 바다와 파도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한 화면 안에 구상과 추상적 표현이 함께 표현되기도 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수평적 색띠만으로 표현 형식이 압축되어간다.

독일 유학시절 매일 매일의 작업에서 오는 성취감과 감정의 표현으로 작업실 입구에 설치한 캔버스 위에 그날그날 하나씩의 색띠를 그어 나간 작품이나 당시 34년간의 삶의 기억을 다채로운 색띠로 표현한 작품들, 그리고 졸업 작품을 구상하면서 140개의 색에 대한 묘사를 적은 소책자를 만들어낸 것 등으로 볼 때 그녀의 색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작품의 중심에 자리잡아 온 것을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어린 시절부터 물감을 다루는 가업(家業)에서 체득한 색채감각 또한 그녀의 오늘날의 작품 감각에 조그맣게나마 일조를 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경이 사용하는 물감은 여러종류의 물감이 일정 비율로 혼합되어 미묘한 뉴앙스가 완성될 때 캔버스에 적용될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경의 경우처럼 표현형식을 색띠(혹은 극대화된 직육면체)로 한정하고 거기서 연상되는 사물과 색채가 주는 심리적 효과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체계적으로 관람자들에게 적절히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비정형적인 색면이 아니라긴 색띠가 누적되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화면은 완전한 추상의 경우가 아니라면 표현상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형식상으로도 작가가 채택하고 있는 직선 형태의 색띠는 자연을 묘사하기보다는 자연과 대척점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는 탈자연적 도시의 모던한 공간과 형상들, 그리고 그 도시가 뿜어내는 생활의 속도와 위력을 묘사하는 데 더 적합한 표현수단일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여행을 다녀온 후 잠깐 동안 작가가 막대그래프처럼 수직으로 배열된 색띠를 이용하여 뉴욕이라는 메가폴리스의 초상을 묘사한 적도 있다.

이러한 표현상의 제약으로 보이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경의 작품을 마주하면 관람자들은 묘한 서정적 몰입의 상태에 도달하기 쉽다. 마치 스스로가 황혼의 바닷가에 와 있는 것같기도 하고 숲과 하늘을 굽어보는 장소에서 영혼의 정화를 체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작가가 채택하고 있는 소재 역시 낭만주의적 신비성이나 노스탤지어를 자아내기 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묘사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를 거부하고 색면추상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서술적인 표현을 절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경의 작품 앞에서 외경심을 자아내는 자연을 바라보는 낭만주의적 상상력과 순수한 색채의 변주를 읽어내는 예민한 감각, 그리고 추상적이기도 하면서 재현적이기도 한 작품을 균형적으로 읽어가야 하는 시각적 체험의 확장과 심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007 © 하계훈(평론)

 
 
Related Exhibition

The fascination of equilibrium – Solo Exhibition, Youngeun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