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언어 그리고 색채

 

그리움에 관한 5개의 색채 구성
“형용사로서의 색채” 시리즈에서 파생된 단어와 색채를 바탕으로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명사를 연상하는 색채로 그려진 시적 질서를 갖는 회화.
완결되지 않은 언어/단어/형용사를 색채와 연결하여 수 많은 확률적 통계를 지닌 색채-언어의 관계가 설정될 수 있고, 이는 몇 개의 통합으로 하나의 구문/맥락/시적 문장-색채 구성으로 관람자에 의해 상상되어질 수 있다. 색-단어 사이의 의도적 공백은 한 문장으로 완성되기 위한 다른 명사 혹은 동사, 즉 다른 품사의 자리이며 다른 색채의 공간이다. 파편화된 색채와 하나의 구절로 완성되지 않은 단어는 공간 속에서 명멸하듯 떠돈다.

시월의 초록
작업을 구상할 때 “녹색”은 다른 색과의 조화가 쉽지 않다. 주변에 흔한 색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색상의 채도와 명도를 조절한다고 해도 다른 색과 배치하면 혼자 튀어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녹색의 그림이 내게는 적은 편이다. 또한 녹색이 주는 감성이 일반적이고 확고한 편이어서 특별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2013년 10월 초의 어느 날 이후, 나에게 “녹색”은 특별한 색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주거 문제로 인해 나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몇 년을 왕래하던 그 길은 내겐 너무나 익숙한 도로였는데, 눈앞으로 불쑥 쳐들어오는 녹색의 두 덩어리가 나를 엄습했다. 가을은 아직 오지 않아 단풍의 기미가 전혀 없던 여름의 끝자락, 지쳐가는 녹색 잎들의 거대한 덩어리에 두려움과 불안함, 이유 모를 긴장이 온몸을 감싸 안아,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를 쫓아오는 듯했던 그 덩어리는 길 끝 부분 하얀 건물이 실체를 드러내자 서서히 사라졌다. 

무엇이었을까? 하나의 언어나 색채로는 확신할 수 없는 그 느낌은 분명한 실체가 있었다. 아마도 나의 개인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일상의 평범한 오후,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계절의 흐름 앞에 조화롭고 편안하며 심신의 안정을 준다는 바로 그 자연의 색을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주거 및 작업의 공간을 찾아 경제 상황에 맞춰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사람들이 찾지 않아 저렴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고 사실은 “녹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지 않던 일을 갑자기 겪어야 했기 때문에 그 상황을 거부하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게는 특별하고 새로운 감성과 경험으로 “녹색”을 대할 수 있었다. 안정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색채가 어떤 순간, 어떤 형태로 다가설 경우엔 전혀 새로운 감성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녹색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것이 아닌, 주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기도 한다.

감정색상표
“형용사로서의 색채”시리즈가 100여개 정도 만들어졌을 무렵부터 비슷한 계열의 색상에서 나는 어떤 다른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먼저 어떤 시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내가 강렬하게 느꼈던 것들을 단어를 중심으로 5개를 선택하고 20cm의 높이를 가진 원고지라 생각하며 5개의 색채를 구성했다. 이후 같은 계열의 색상이지만 서로 다른 감정/언어로 표현된 것을 같은 방법으로 구성했다. 단어와 색상, 어떤 선택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구성은 달라질 수 있어 주관적 색채-언어 유희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2014, ⓒ Lee K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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