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2018
아름다운 우울
2012년 처음 형용사로서의 색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만들고자 노력했던 색은 ‘긍정적인’ 이었다. 몇 개월을 씨름했고 결국 나는 포기했다. 세상 또한 정치적인 사건들과 촛불집회로 사회 기반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알 수 없던 불확실하고 우울한 시기였다. 스튜디오에서의 상대적 격리에도 불구하고 나 개인의 일상도 예외일 수 없었기에 거기에 매몰되어 있었다. 당시 내 작업의 기본이었던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색상을 거의 얻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긍정과 치유의 단어들은 어떤 조색으로도 실현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260여 개 색의 대부분은 어둡고, 낮은 채도의 다양한 회색 스펙트럼으로 구성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희미한 햇살이 작업실 창으로 스며들던 2016년 겨울 어느 날, 언제나 그 자리에 세워 놓았던 가벽에서 색채의 조각들(칼라 칩)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아름다움이었다. 가벽 위에 정리된 색들은 깜깜하고 보잘것없고 힘겹거나 잊혀진, 절망적인 색들의 조각이었다. 언제나 갈망했지만 느낄 수 없었던 그 아름다운 색채는 결국 하나의 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 모든 것이었나 보다.
죽음으로 이해되는 비존재가 아닌 감각적인 실존으로서의 살아있음,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비록 삶의 여정, 그것은 우울할지라도.
형용사로서의 색채를 위한 드로잉, 2012년 이후 진행중인 프로젝트.
나의 색을 만들고, 그 시간을 기록하고, 직관적으로 확정한다. 종이 위에 시간과 함께 기록된 색채의 덩어리들은 하나의 형용사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순간들의 동일한 감정 표현이다. 이 기록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된 감정이 한 사람의 개인에게서 조차 얼마나 다양한 색채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형용사로서의 색채, 2012년 이후 진행중인 프로젝트 (2018년 10월 현재 291개)
형용사로서의 색채를 위한 드로잉을 통해 확정된 색채는 캔버스 위에 두께가 보일 듯 말 듯한 정도의 양각으로 보이는 형용사 문자와 함께 단색으로 그린다. 대부분의 단어는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언어로 표현되었다. 이 시리즈는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환경 속에서 한 개인이 그 변화에 반응하고 행위하고 느꼈던 감정으로, 욕망하고 기대하고 절망했던 순간의 내면적 기록으로서의 감정 언어와 색의 조합이다.
형용사로서의 색채를 바탕으로 한 회화
형용사로서의 색채로 만들어진 색–단어의 조합(CAA=Color as adjective)은 회화적 실험을 통해 의미체계로서 하나의 단위로 기능한다. 캔버스 혹은 좀 더 큰 종이나 벽 같은 평면 위에서 펼쳐지는 CAA는 무한히 늘어서는 교집합 또는 합집합의 구성으로 의미의 장(Sinnfeld/Sense field)을 이루며 다양하게 변화하는 맥락으로서의 또 다른 의미체계를 만들어낸다.
“색으로 쓰다” 시리즈나 “선” 시리즈의 제목인 ‘절망의 탑’, ‘끝나지 않는 기대’, ‘’가치의 무의미’,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에 대한 현재’, ’틀의 가장자리에서’, ‘그런 봄’, ‘아직은 아닌’ 등에서 드러나듯 추상적인 질서와의 관계에 대한 나의 현실적, 감각적 의미의 장을 CAA를 매개로 펼쳐 놓는다. 조형 형식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로서의 다양한 CAA의 구성은 인간 감정의 모호성과 세계의 변화무쌍한 현상을 그리고 있다.
선_Lines
처음엔 가을바람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던 바람결은 마치 시간이 스치고 지나가는 닿을듯 말듯한 서늘함이었다. 잡을 수 없던 그 느낌은 빈 캔버스를 바라보던 순간 시간조차 무의미한 세계의 궤도처럼 곡선을 그리며 눈 앞에 펼쳐진다. 하나의 감정과 다른 감정이 교차하고 또 다른 감정이 연속 교차하면서 다중의 세계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아직은 아닌
내가 사용하는 색채는 과거의 어떤 시간, 어떤 순간에 다양한 감정의 변화 속에서 포착된 개별적인 형용사로서의 의미로 표현되었다. “아직은 아닌”에서 구성되는 색과 비정형적인 형태의 관계는 아직은 확실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떤 추상명사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진술서와 같다.
칠하다
정사각형 종이 위에 임의로 설정된 사각형은 나에게 주어진 회화적 제한조건으로 한 면이 열린 직사각형에 특정 감정의 색을 칠한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사각형은 완결되지 않은 구조와 미처 다 칠해지지 못하는 감정의 색을 갖게 된다. 이것은 남겨진 바탕 위, 미완의 구조 속에서 채워질 수 없는 혹은 넘쳐흐르는 감정의 은유다.
덩어리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실제 감지했던 복합적 감정을 9개 색의 덩어리로 표현한 2016년 시리즈와 같은 맥락이지만 의도적으로 설정한 색의 수 한계를 풀고 검정과 흰색 바탕이라는 평면 조건도 변화시켰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시간과 자연이었다.
모난 덩어리
하나의 유일한 감정은 서로 다른 감정을 포함하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드로잉은 불규칙한 각도와 색채 구성의 모난 덩어리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절대 상태/수평
우리는 지구에서 똑바로 서 있다고 생각하고 수평선을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는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져 있어 상상 속의 수평과는 그 만큼 차이가 있다. 이 사실에 주목하여 종이 위에 직사각형을 그리고 23.5도의 기울어진 사선으로 분할, 드로잉한다. 서로 다른 감성의 색채를 채우고, 직사각형 자체의 각도를 다양하게 변화시킴으로써 감정의 수평 상태 –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쉼없이 자전과 공전으로 돌고 있는 이 지구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를 생각해 본다.
캔버스 위에는 서로 상반된 개념 또는 유사한 개념의 단어와 색채를 다양하게 조합, 하나의 색에서 다른 색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5mm의 간격과 23.5도의 기울어진 각도로 그린다. 기울어진 상태가 절대적인 수평 상태임을 단 두 개의 형용사로 명명된 감정색과 반복되는 색면으로 강조한다. 형식적으로 하드엣지한 이 작업은 색과 색 사이를 채우는 이름없는 색들로 아직 명명되지 않은 상상의 색과 언어의 실재를 드러내며 단순한 하드엣지의 형식을 벗어나고자 한다.
제한조건 내에서의 색의 의미와 면적의 문제
하얀 사각의 평면은 회화가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조건 가운데 하나다. 35x35cm 평면 위에서 검은 연필로 다시 조건이 제한된 또 다른 평면을 상상한다. 그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면적의 크기가 서로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에 따라 형용사로 개념화된 색상 사이의 의미와 긴장감은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있다.
회화의 조건과 위치에 관한 문제
기울어진 감각의 장에서 발생하는 회화의 조건과 위치에 대하여 색–형태–의미 발생에 관한 실험적 연구.
2018 , ⓒ 이경
My Beautiful Melancholy
I was striving to make the color for “positive” in 2012 when I launched the project Color as Adjective. I gave up in the end after several months of wrestling with this idea. It was an uncertain, gloomy, and dismal period when we did not know where our society was heading due to political scandals and candlelight vigils. Despite my relative isolation in my studio, I could not ignore these series of events. Positive and beautiful colors, the elemental factor of my work at the time, seemed like they were nearly unattainable due to my personal feelings. Words of affirmation and healing could not be represented with any color scheme. As a result, the majority of over 250 colors consisted of different shades of darkish gray with low saturation.
On a winter day in 2016 when dim sunlight was permeating through the studio’s windows, I noticed some color chips shining on a temporary wall I had set up. I felt beauty in that moment. The color chips arranged on the free-standing wall were fragments of dark, trivial, tough, and desperate colors. The beautiful color I had always longed for but could never grasp was by no means made with just one color! That seemed to be everything.
Being alive, per se, with a sensuous existence is a form of beauty even though we feel melancholic during life’s journey.
Drawing for Color as Adjective, Project in progress since 2012
I make my own colors, document their time, and determine them by intuition. The lumps of colors chronicled on paper along with time are expressions of the same feelings couched in adjectives. This record shows how an emotion couched in one word can be expressed in a wide array of colors.
Color as Adjective, Project in progress since 2012 (291 adjectives as of October 2018)
The colors determined by this project are painted in monochrome along with the characters for adjectives that appear embossed on the canvas. Most of the words are emotional and psychological. This series represents the emotions an individual feels in a rapidly changing environment as they react to such a change. This project demonstrates a combination of emotional language and color as a chronicler of the inner world in a moment of desire, expectation, and despair.
Painting Based on Color as Objective
Color as Adjective (CAA) works as a unit of the semantic system through pictorial experiments. Unfurling on a canvas, paper, or a wall, CAA forges a sense field through compositions such as intersections and unions, engendering another meaning structure in variously morphing contexts. The field of my realistic, sensuous meaning pertaining to abstract order is unfolded through the medium of CAA as indicated by the titles of works included in the series Writing in Color and Lines such as Despair Tower, Never-ending Expectation, Meaninglessness of Value, The Present apropos of Unforgettable Moment, At the Edge of the Frame, That Spring, and Not Yet. Diverse colors as adjectives and as a new formative style represent ambiguity in human emotions, portraying ever-changing phenomena in the world.
Lines
It was an autumn breeze at first. The breeze sensed by my fingers felt cool as if time was brushing past. The uncatchable sensation unfurls before my eyes the moment I view an empty canvas, drawing a curve like a meaningless world’s trajectory. Plural worlds are associated with one another as an emotion crosses another and then another in a sequence.
Not Yet
The colors I use are couched in the meanings of freestanding adjectives that were captured in the past at a certain moment. The relation between composed colors and atypical forms is like an incomplete statement on an abstract noun that cannot be clearly defined as of yet.
Painted
A randomly placed quadrilateral on a square piece of paper is a pictorial condition given to me. It has one side that remains open and is painted in a color that refers to a specific emotion. Quadrilaterals which vary in size and shape come to have incomplete structures and not yet painted colors of feelings. They are a metaphor for emotions that cannot be filled or overflow in an unfinished structure left on the ground.
The Mass (Die Masse)
I attempt to dissolve the limits of intentionally set colors and change the two-dimensional conditions of black and white, although in the same context as my 2016 series which represented unaccountable yet actually sensed complex emotions with masses of nine colors. Time and nature work as the impetus for such a change.
The Angular Mass (Die Eckige Masse)
One single emotion consists of a mass of different emotions. This drawing represents this idea with an angular mass featuring irregular angles and color compositions.
Absolute State / Horizontality
We tend to think we stand upright on Earth since we envision a horizontal line. There is, however, a gap between actual and imaginary horizons since the axis of the Earth is tilted at approximately 23.5 degrees. Paying heed to this fact, I draw a rectangle on paper and divide it using a diagonal line with an inclination of 23.5 degrees. I believe that it is possible to maintain a horizontal state of emotions—a peace of mind despite the Earth’s revolution and rotation—by filling the colors of mutually different emotions and diversely changing the angles of the rectangle.
I diversely blend words and colors with contrasting or similar connotations in the canvas. A process of shifting from one color to another is depicted with the space of 5 mm and a tilt of 23. 5 degrees. The fact that this slanted state is in an absolute horizontal state is underlined with emotional colors couched in two adjectives and repetitive color fields. Hard-edge in terms of form, this work uncovers the nature of imaginary colors not named yet and the reality of language and makes a foray into escaping the form of simple hard-edge.
The Matter of Color’s Meaning and Area Within Constraints
The plane of a white square is one of the diverse conditions on which a painting can exist. I picture another plane whose conditions are also restricted by a black pencil on a 35×35 cm flat surface. I experiment with how meanings and tension of colors conceptualized with adjectives can diversely change according to how areas varying in size contact one another on this space.
The Matter of Condition and Position in Painting
An experimental study on the genesis of color-form-meaning regarding the condition and position of painting which occurs in the form of titled senses.
2018, ⓒ Lee Kyong
Translated by ArtNText
Color as Adjective III, Gallery CHOI, 2018, Seoul,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