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2007년 5월호)

가늘고 긴 색띠들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색의 변주를 통해 자연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담는 화가다. 추상 회화지만 최대한 보편적이며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세상의 풍경을 담는 데 주력한다. 바다, 모래, 하늘, 노을, 숲 등 친숙한 자연의 이미지는 그녀만의 독특한 색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감흥으로 우리 가슴에 서정을 불어넣는다.

하늘 한 조각ein Stueck vom Himmel, 50X35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06년 제목처럼 하늘 한 조각의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은 푸른 색감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실제 하늘이 담고 있는 풍부한 질감을 잘 표현했으며, 하얀 구름의 띠가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자극한다.

영은미술관 레지던시 작가로 있는 이 경. 5월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열 번째 개인전을 위해 49점의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첫인사부터 걱정을 늘어놓는다. 실제로 그녀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괜한 엄살은 아니었다. 아크릴 테이프로 한 줄씩, 그것도 색의 배합과 배열을 치밀하게 계산하며 채워 나가야하니 과정 자체가 수도修道일 듯도 했다. 사진으로 본 그녀의 작품은 매우 평면적이었으나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때시야를 가득 채우는 질감과 입체감은 신선한 발견이었다.

선과 면과 색이 만들어내는, 추상 회화의 극단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자연의 이미지는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어렵게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형태를 없애는 거예요. 보세요. 형태는 없지만 붉은 것은 노을 같고, 파란 것은 바다 같고, 저기 하얀 부분은 모래사장처럼 보이지요? 이 그림을 보면서 여기에 등대도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엔 갈매기가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 제 그림을 제대로 이해한 거죠.” 독일 유학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녀가 그리는 세계, 자연의 모습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더 쉬워졌다고 말한다. 형태는 배제하고 색채만 남김으로써 보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게, 색자체가 보편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작품이 특별한 곳에 기증될 거라는 얘기를 누구보다 반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론가들은 색띠, 추상, 미니멀리즘, 이 세 단어면 제 작품에 대한 평이 끝나죠. 하지만 일반인은 바다를 떠올리고 하늘을 그려보고 등대를 상상하죠. 만약 100명의 아이가 하나의 그림을 보고 저마다 바다와 하늘을 상상하면, 그것은 곧 100개의 파라다이스가 됩니다. 이것이 보다 많은 곳에 그림이 걸려야 하는 이유죠.”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한 화가는 세잔이다. 색감뿐만 아니라 끈질기게 자기 세계를 추구한 고집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화가의 길을 걸은 생 자체가 자신이 꿈꾸는 것이라고 한다. 미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되레 아이보다 어른이 더 문제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아이는 의외로 직관력이 뛰어나 한마디만 설명해줘도 이해가 빨라요. 무관심과 선입견으로 무장한 어른이 더 힘들죠. <럭셔리> 같은 매체가 어른의 미술 재교육의 장이 돼줘야 합니다. 현대 미술과 함께하는 이런 기획을 더 많이 해주셔야 하는 거죠.”

기자/에디터 : 이승민
디자인하우스 (2007년 5월호) ⓒ Desig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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