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카덴짜

류지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 경의 이번 전시는 수평의 색띠를 중첩시킨 ‘파라다이스’ 연작을 선보였다. 작품마다 각각 풍경, 자연을 암시하는 부제가 덧붙여지긴 했으나 작품에서 풍경으로서 형상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힘들다. 가늘고 긴 색띠의 중첩은 마치 추상회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색띠는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배합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미묘한 색채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화음을 이루어내고 결과적으로 은유적인 공간감을 제시한다. 색채의 복합 단층이 색면의 단위를 넘어 감수성 넘치는 화면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는 색띠의 증식은 2차원의 화면을 초월한 시공간의 무한성을 암시하고 있다. 전시장을 가득찬 색채의 울림은 색채가 지닌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로서의 특징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었다.

한편 섬세하게 재단된 색띠의 배합과 매끄러운 마무리 처리는 그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작품 표면에 나타나는 독특한 질감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개성을 느끼게 한다. 색띠 경계사이 예리하지만 약간은 거칠게 처리된 가장자리가 선인지 또 다른 재료인지 혹은 의도된 질감처리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러한 독특한 경계선의 처리가 작가 손길의 흔적으로서 작업과정을 짐작함과 동시에 화면 자체의 촉각적인 감각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색채가 가진 상징성을 통해 대기와 빛의 스펙트럼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결과 그녀의 풍경화는 작가의 감성에 의해 추출된 주관적인 풍경이다. 작가는 한동안 개인의 삶에 대한 사유를 외부로 표출했던 작업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이전 작업과는 달리 이번 전시는 외부세계에 대한 작가의 상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혼란한 현실의 틀 속에서 자신에게집중하여 작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자체는 정신적인 여행과 같다.

풍경이 흔한 주제로 간과될 수 있으나 각각의 자연이 저마다의 모습을 띄고 있듯이 모두들 자연, 풍경에 대한 저마다의 사고와 감성이 다르다. 작가가 풍경을 바라보고 나타내는 과정은 기하학적 시선 혹은 기계적인 관점에 기반을 두고있는 듯 하지만 오히려 인간적인 감수성을 회복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다시말해 작가는 특정한 사고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반영하는 수평적 구도의 풍경을 통해 작가의 사유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관객 각자의 상상력을 풀어 놓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2006 ⓒ 류지연 (월간미술 Review  200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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