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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I 2007-lee - Lee Kyong
Abstract Painting Artist
Kyong_Lee, Contemporary_art, Abstract, Color-Adj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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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작가 포럼(AFI) 2007 ‘기억의 지속’ 프로그램

 

감각의 프리즘을 통과한 색채들

이선영(미술평론가) 2007년 9월

보일락말락 경계지어진 선 내부를 채우는 밀도높은 색들이 섬세하게 전개된다. 이 추상회화에서 지평선 혹은 수평선처럼 화면을 평행으로 가르는 가느다란 선들은 테이프를 붙이고 칠한 안료의 집적에 의해 생겨난다. 이경의 그림에는형상은 없지만 풍경이 연상된다. 시선을 순차적으로 통과시키는 드넓게 펼쳐진 층위화 된 색면과 물, 하늘 등 자연에서 추출된 듯한 색감이 그러하다. 작가 스스로 정의하듯, ‘풍경이 연상되는 추상’이다. 미묘한 톤의 색들은 하늘 한조각, 파도 한무리, 심지어는 시궁창이나 흙탕물에서도 길어 올려진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인상의 산물이라기 보다는,오랜 관념의 우회로를 거쳐 생성된다. 그것은 자연의 한조각이자 자율적인 예술작품인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모델이 없는 색1에서 모델이 없는색2로 가는 과정의 이름없는 색의 변주들이며, 헤아릴 수 없는 세계가 응축된 면’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모델이 없는 색’이라함은, 이 그림들이 순간적인 인상이 아니라, 기억과 관념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기억과관념은 개념적 도식이 아니라, 한 때 매료되었던 것에 대한 깊은 감흥과 관련된다. 그것은 아무런 형태도 이야기도 담고있지 않지만,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을 예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인식하고 이해한 산물이다. 한 줄기 빛을 투과하여 분해된 색광을 만들어내는 프리즘처럼, 작가를 온전하게 통과하여 만들어진 주요 산물은 색채이다. 작업실 정면에 걸린 동일한 크기의 작품 49개는, 같은 형식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색에 집중하도록 한다. 풍경에서 직간접적으로 따온 그것들은 대부분 다양한 중간 색조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서 색은 색을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는 잠재성을가진다. 이 잠재적 에너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전달할 것인가에 주안점이 놓여진다. 색은 형태와는 달리, 철저히 감성의 영역에 속해있어, 관객은 서서히 변화하는 중간지대의 색들의 궤적을 따라갈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연결되는 때도 있고, 극적으로 도약하기도 한다. 작품이 크든 작든 간에 캔버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는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원하는 색을 만들기 위해 여러번 칠을 하고 말려야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색면의 층들은 나이테와 같이 시간의 흐름을 각인한다. 미술에서는 아직도 일필휘지로 단번에 끝내는 것에 대한신화가 남아있지만, 이경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오래 고민을 하는 편이다. 더 나아가 작가는 최초의영감이 소멸되어야 그 다음의 색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색을 정하고 색면을 채우는 일은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반복적인 일이지만, 그것은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차이를 가진 반복이기 때문에, 단순한 기하학으로 환원될수 없다. 구획된 칸들의 넓이는 그 안의 색조들처럼 철저한 감각의 산물이다. 규격화된 칸에 갇히는 것은 형태에 갇히는 것 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진이나 컴퓨터 같은 도구의 기계적 과정은 이경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기하적인추상의 면모가 있되, 개념적인 환원은 아니다. 환원이란 손쉬운 판단이다. 진정한 그림이란 개인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부호를 나열하고, 그것으로 덧셈 뺄셈을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경의 그림은 수평면이 암시하는 편안한 시야와는 반대로, 안료가 집적된 가는 선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존재한다. 92년부터 2000년까지 계속되었던 독일 유학중의 작품들에서는 대조되는 항이 보다 분명하다. 그때 제작된 작품들에는 무정형의 덩어리로 포착된 자연 혹은 모호한 감정의 상태와, 정제된 조형적 언어 혹은 주관적인 의지 간에 벌어지는 접전이 전달된다. 요즘은 아크릴 물감을 쓰지만, 당시에는 돌발적인 흔적들이 두드러지는 타시즘적인 유화작품을 했다. 거기에는 물이라는 형태와 색채를 고정시킬 수 없는 카오스적인 형상과 그 안에 놓여있는 직선, 또는 기하학적인 면들의 대조가 있다. 그것은 자연, 예술, 그리고 의지 사이에 놓인 긴장을 표현하고 있다.

 

2004년부터 시작한 근자의 작업에서는 대립되는 항들끼리의 드라마틱한 접전이 색면이라는 또다른 차원으로 전이된다. 추상은 자연에 이미 있지만, 겉으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내재화된 질서를 끄집어 내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인간이 심연과 혼돈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최종적으로 섞여진 색들로 고착된 이경의 화면에는 붓질이 감추어져 있다. 캔버스 위의 액션은 자제되어 있다. 매끈하게 칠해진 색면들은 순수한 시각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이러한 순수한 시각적인 공간은 수평면들과 어우러져 쾌감과 휴식을 준다. 그러나 이 매끈한 추상적 색면들은 상징적인 코드로 귀결되지는않는다. 수많은 겹을 이루는 색면들을 미리 결정짓는 요인들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타시즘적인 작품에서 존재했던 돌발적인 흔적이 요즘 작품에서는 텅 빈 캔버스로 남아 매순간 피말리는 선택을 기다리는 색면들이 되었다. 작가는여전히 붓을 쥐고 손으로 그리지만, 손보다는 눈이 강조되고 있는 듯하다.

 

질 들뢰즈는 현대회화에 큰 시사점을 던져주는 자신의 책 [감각의 논리]에서 손과 눈의 관계를 논하면서 추상을 재정의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코드화는 눈에 대한 손의 종속을 표시한다. 여기에서 손은 순수한 시각적 형태에 상응하는단위들을 선택하기 위해서만 개입한다. 손이 종속될 수록 시각은 이상적인 광학적 공간을 발전시키고, 형태들을 광학적 코드에 맞게 포착하는 경향을 띈다. 그러나 형태없는 공간이 색면의 변화에 의해 쉴새 없이 움직이는 이경의 그림에서 여전히 ‘손적인 것’은 남아있다. 색과 색이 만나는 접촉의 지점들을 가늘게 남겨두는 작업을 통해, 눈으로 만질수 있는 영역을 남겨 놓는 것이다. 이러한 회화적인 끈을 통해 서사와 재현을 넘어서 지속적인 분출이 화면 안에 색채로 응결된다. 이경의 작품은 순수한 색의 관계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들뢰즈에 의하면 색채주의는 눈으로 만지는 공간이다. 미묘하게 변화하는 색역들은 전형적인 광학적 공간에서 보여지는 바의 밝음과 어둠, 빛과 그림자의 대비에 의해정의되지 않는다.

 

색채적 공간은 따뜻함과 차가움의 대비, 팽창과 수축의 운동에 의해 정의된다. 여기에서는 색채를 공간화하는 작업이이어질 뿐이다. [감각의 논리]는 빛은 시간이고 색은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이경은 명료한 선으로 구획된 단색조의 면을 구사하는 기하 추상화가가 아니라, 색채주의자에 속한다. 그것은 자연을 기하학으로 환원했던 ‘현대미술의 시조’로만이 아닌, 뛰어난 색채주의자였던 세잔의 작업에 비견할 만하다. 들뢰즈는 세잔의 그림에서, 기하학은 뼈대이고 색채는 감각, 즉 착색감각이라고 말한다. 이경의 작품 역시 감각과 뼈대로 만들어진다. 이경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것은 감각에게 지속과 명확함을 부여하는 뼈대이다. 가령 그녀의 그림에서 구획된 면들은 쇄도하는 감각의 혼돈에 지속성과명증함을 부여하는 구조가 된다. 여기에서의 구조는 안정적인 척도를 가지지는 않지만, 색에서 색으로 미끄러지는 역동성을 통해 일련의 필연적인 방향성을 보유하고 있다.

 

색의 변조들이 만들어내는 조화 안에서 수평적인 평면들이 서로 연결된다. 융합과 팽창, 수축의 운동을 통해 기하학은감각적으로 되고, 감각들은 명확하고 지속적으로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색채주의자들은 감각을 실현한다. 엄밀하게그어진 선들 안의 색면은 표현적인 운동의 산물이지만, 그것이 무엇인가를 확정적으로 의미하는 코드나 부호가 아니라는 점에서 유사언어적이다. 들뢰즈는 회화에서의 색채와 선이 바로 유사언어라고 말한다. 이경의 작품에서 조형적언어는 코드가 아닌, 육감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미학적 유사와 관련된다. 이 유사성들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즉각적으로 연결한다. 이 요소들 사이에는 무한한 결합 가능성이 있으며, 제한된 평면 안의 모든 순간들은 현행적이고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서 추상은 회화 외적인 코드를 회화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화적인 코드를 만들어낸다. 색채에 의한 변조는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하나의 틀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닮음을 창출한다.

 

2007 © 이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