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작가 포럼(AFI) 2007 ‘기억의 지속’ 프로그램

조선령(대안공간 풀 객원 큐레이터) 2007년 9월

이 경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는 “나에게 있어서 회화는 기억의 조각모음과 같다”라는 작가의 말이다. ‘기억’이라는 단어와 ‘조각모음’이라는 단어는 얼핏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기억이란 단편적이고 주관적이고 언제나 선택적이기 때문에 ‘디스크 조각들을 모으듯이’ 가지런히 정돈하기 어렵다. 기억을 조각모음처럼 복원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부분을 메꾸고 재생하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평등한 매력‘이라는 최근의 개인전 제목에서도 이런 역설적인 결합이 발견된다. ‘매력’이란 범주는 ‘평등’할 수가 없다. 매력은 항상 ‘다른 것보다 이것’을 선택하게 하는 ‘불평등한’ 범주이다. 이런 ‘불평등’은 사실 우리의 기억과 감수성이 갖는 본질적 특성이다. 평론가 강수미는 이 경의 작업을 ‘경험의 그래프화’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것은 어쩌면 경험의 그래프화라기보다는 경험의 ‘불평등함’과 그래프의 ‘평등함’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지 않으려고 하는 작가의 성향인 듯하다. 경험이 그래프화된 것이 아니라 ‘경험’과 ‘그래프화’ 사이에서 작용하는 진동, 긴장과 간극이 느껴진다.

이 경의 작업에는 이처럼 환경이나 경험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그것을 정돈하고 해석하고 ‘평등하게’ 만들려는 역설적인 의지가 함께 들어있다. 쉽게 보면 풍경을 개념적으로 해석하거나 경험적 사실을 구조적 도표로 변환하려는 분석적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경의 작업이 작용하는 곳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이다. 여기에는 감성과 이성의 관계라는 키워드보다는 오히려 혼돈과 의지의 관계라는 키워드가 필요하다. “카오스를 정돈하려는 의지”, 그것이 이 경의 작업에서 읽혀진다. 그녀의 작업이 본질적으로 기억과 관련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정돈’이란, 사라지고 잊혀지는 기억을 명료하게 보조하려는, 혹은 경험의 혼돈스러움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좀 더 차분하고 반성적인 무엇으로 만들어 간직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가 색채에 대한 감수성을 보여주면서도 그 색채들을 섞지 않고 독립된 영역으로 남겨두는데다 색채들 간의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데서도 이러한 점은 잘드러난다. 이러한 ‘경계선’들은, 일반적인 하드에지적인 회화와는 달리, 기계적 감수성을 표현하거나 경험을 개념화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개별 색채들을 그 자체로 생생하게 간직하려는 목적에서 등장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는 경험이나 감성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기억을 정돈하고 싶어하지만(그렇게 하고자 하는 배경에는 작가의 성격이나 경험의 특수성이 깔려있겠지만,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추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험의 생생함이나 감각의 생기 그 자체를 상실하지 않는 한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통상 분류나 정돈의 수단이 아닌 색채를 통해 분류나 정돈을 하려는 노력 자체가 그런 역설적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공존하기 어려운 것들을 공존시키려는 작가의 이 노력은 매우 난이도가 높고 리스크를 안고 있는 작업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높은 리스크’에서 나오는 긴장감이나 강렬함이 작업의 최대 매력이며, 작가가 앞으로도 계속 이끌고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리스크가 높다’는 것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다. 작업에 여러 가지 요소가 다양하게 섞여있을 경우, 하나가 부족한 부분을 다른 것들이 메꾸어줄 수가 있고, 전체적인 효과 속에서 세부적인 것이 묻혀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경처럼 단 하나(분리된 색채들)만을 표현 매체로 선택할 경우, 오로지 그것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러한 집중적인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리스크를 높인다. 다양한 것들을 사용하는 작가보다 더 고도의 퀄리티와 오리지날리티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물론 이 어려운 길을 굳이 선택한 것 자체가 작가의 스타일이자 개성일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선택이 성공했을 경우, 그녀의 작업은 손쉬운 연상을 거부하고 대상화와 대상화 불가능성 사이를 긴장감있게 진동하면서 보는 이를 무한한 상상과 내적 반성으로 인도하는 특이한 매력을 갖는다. 그녀의 작업은 예쁘지 않다. 보는 이의 감성에 쾌적하게 호소하지 않으며 오히려 돌연하고 생경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이 경 작업의 최대의 매력이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지명을 명시한 표제를 붙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는 이를 너무 손쉽게 특정한 이미지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생경함이 좀 풀어진, 상대적으로 ‘편안한’ 작업으로 갈 경우 단순한색면화로 보이게 될 위험도 있다. 정리하자면, 한편으로는, 작업을 너무 쉽게 어떤 특정한 풍경의 번역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한 색면화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이 양쪽의 위험을 염두에 두면서 역설적 결합의 긴장과 간극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녀의 작업에 들어있는 환경과 공간에 대한 감수성은 일반적인 색면화와 차별되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데, 이점을 좀 더 살리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작업실 벽에 매일 매일 색띠 모양의 ‘출근부’를 작성했던 2001년-2002년의 ‘성실도 테스트’ 같은 작업의 경우, 매우 좋은 느낌이다.  ‘경험의 생생함과 혼돈을 정돈하려는 의지’라는 키워드가 매우 명확하게 읽힐 뿐 아니라(매일 매일의 출근부라는 ‘평등한’ 그래프이면서도 동시에 그때마다 다르게 느꼈던 감성에 대한 색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추상화 작업이 성취하기 어려운 환경과 시간에 대한 감수성까지들어있어 높은 수준의 오리지날리티를 획득하고 있었다. 작업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같은 레퍼런스를 더욱발전시켜보면 어떨까? 이 말은, 공공미술로 나가라는 것이 아니라, 작업이 시작되고 완성되고 설치되는 환경 내지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작업, 혹은 그러한 과정에 소요된 시간성을 좀더 드러내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는 의미이다. 이미 그런 요소들이 작업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좀더 독특한 표현방법으로 강조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2007 © 조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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