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you sing, you are where you are. 당신이 노래할 때, 그곳에 당신은 존재합니다.

September 7 – October 27, 2022
Ligak Museum of Art

기획: 손정은 Son Jeong-eun
참여작가: 강현아. 김소연. 김수진. 김주리. 김지수. 김진선. 문소현. 민 경. 손미정. 손정은. 손혜경. 이 경. 미알용. 이자연. 주지한. 황지현  

 

 

《When you sing, you are where you are》는 17명의 여성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전시이다. 참여 작가들은 여성주의로 스스로를 표방하지 않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꿋꿋하게 예술가로 버텨내며 창작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한 명 한 명이 훌륭한 여성 미술가들이라 고 할 수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여러 연령대로 구성된 작가들의 작품에는 그들의 삶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다. 삶은 창작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작 가의 개인적 삶의 이야기보다는 작품의 형식이나 매체, 혹은 시대의 담론들이 더 부각되곤 한다.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에서 삶에 관한 이야기들은 흔히 페미니즘으로 범주화되지만, 작가의 실제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며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여성의 역사를 이슈화하거나 발언하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험을 묘사하거나, 여성의 욕망과 환상을 들춰내기도 하지만, 보다 포괄적인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진 각기 고유한 상 상력을 가진 개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이미지를 작품에 드러낸 사례로, 주지한, 강현아, 황지현의 작품이 있다. 주지한은 어린 소녀 흡혈귀를 그렸다. 뱀파이어란 강력한 이빨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소녀는 틀니를 손에 들고 있어서 언제든 연약한 피식자가 될 수 있는 어린 여성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강현아의 사진 속 소녀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 어딘가에서 전지구적 재난 끝에 생존한 마지막 인간을 연상시킨다. 이 소녀는 여성이 아니라, 현실의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추는 한 인간 존재의 상징이다.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에 파리지옥 같은 자궁의 이미지를 그린 황지현의 회화에서는 여성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관념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작가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 여성은 누군가의 딸이며 누군가의 어머니이다. 냄새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진 김지수는 창작의 모티브가 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민경은 어머니가 된 작가 자신과 아들의 영적 고리에 대한 서사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작품에서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이말용과 손혜경의 경우, 작가의 개인적 삶이 작품의 접근과 표현방식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말하는 이말용은 가부장제 안에서의 여성의 삶과 노동을 낙엽으로 지은 옷을 통해 보여주고, 손혜경은 실용성과 장식성, 가성비를 겸비한 이케아의 인테리어 소품과, 작가의 예술적 노동을 통한 조형적인 사물을 결합시켜 자본주의의 미적 가치와 예술가의 노동의 가치의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수행으로서의 예술 실천에 가까운 노동을 반복하는 김소연과 이자연은 시대적 트라우마를 작가의 내면적인 성찰을 통해 승화한 사례이다. 이 경 작가의〈형용사로서의 색채〉는 순수 추상이 가지는 절대적 초월 상태의 어느 지점을 보여 주는데, 작가는 매 순간 경험하는 느낌과 감각을 색채로 표현하여 언어화할 수 없는 인간 감정의 모호성과 변화하는 세계의 찰나를 보여준다. 그 밖에도 노마딕한 삶의 경험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김주리, 일상의 깊은 우울의 감정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소현과 손미정, 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김진선과 손정은, 공간 운영자로서 아트 잠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적이고 공적인 기억을 아카이빙하는 김수진 등, 참여하는 모든 작가의 작품들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 묻어나는 개인의 서사가 있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그런 세상.
내 자유 의지가 운명을 지배하는 곳.
신호의 연결 고리를 동여매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고, 내 명령에 따라 존재가 무한히 지속되기도 하는 곳.
쓰는 즐거움.
지속의 가능성.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쓰는 즐거움』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창작을 하는 이유를 위와 같이 노래하였다. 《When you sing, you are where you are》는 쉼보르스카의 시구처럼, 창작하는 즐거움이 한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해가는 원동력이라고 믿는 17명의 작가들의 작품세계 통해, 그들의 창작의 모티브가 되는 삶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여성 작가로서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기획하였다.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여성 작가로서의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잠시나마 뜻을 함께 하는 동료가 되었다. 이번 전시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후 원해주신 리각 미술관의 이상원 관장님께 감사드린다.

2022년 9월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 손정은

Photo by 민경 Min 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