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로서의 색채 : 감각적 현존
나의 작업은 내가 ‘지금, 여기(Hic et Nunc)’에 감각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증명하는 일이다. 양평의 느린 산책, 작업실에 흐르는 재즈의 리듬, 그리고 아침의 미묘한 공기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는 감정들을 붙잡는 일에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나는 오늘도 그 어떤 색이나 언어로도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의 스펙트럼 속에서 살고 있다. 세계는 끊임없이 불안한 소음 속에서 흔들리고 있고, 나는 그 안에서 작은 평온을 애써 붙잡는다. 그러나 고요 속에서 떠오르는 감정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며 느끼는 무력감과, 역설적으로 평온한 들녘에서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있다는 이질적인 감각의 뒤섞임. 두려움과 설렘, 이름 붙이기 이전의 떨림들—이런 낯선 감각들은 내가 여전히 이 세계와 뜨겁게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나에게 색은 감정이 잠시 머무는 자리이며, 세계와 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번역이다. 2012년부터 이어온 <형용사로서의 색채> 연작을 통해 나는 감정의 미묘한 결을 따라 색을 조색해 왔다. 그간 만들어진 450여 개의 색들은 감정이 평정을 향해 나아간 흔적이자,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물질적 각인이다.
감정은 언어로, 언어는 색으로, 색은 다시 회화로 번역된다. 이 번역을 위해 나는 작업실에서 깊이 침잠하며 긴 시간을 보낸다.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감정들, 반복되는 시간, 색과 언어들의 산란한 혼합을 가려내기 위해 물감을 섞고 다시 섞는 과정을 반복한다. 기쁘고 아름다운 감각뿐 아니라 세계의 이면까지도 피하지 않고 색으로 대면하는 이 고단한 ‘연금술’이야말로 나의 예술적 동기이며, 감정을 평정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다.
이번 전시는 기록과 번역의 시간을 지나 감각의 지평으로 확장되어 온 여정의 한 단면이다. 캔버스 위에 쌓인 색의 지층들이 여러분 각자의 기억과 감각에 닿아, 또 다른 번역의 순간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