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아트인컬처 7월호

영은미술관 개인전시 리뷰

 

객관적인 자연, 혹은 도시의 풍경 그 자체는 그림이 되지 않고, 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그저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담겨져 있는 사물의 표정을 읽는 것이며 느끼는 것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의식이 개입되지 않으면 풍경은 그저 자연 그 자체(nature itself)로 남아있을 뿐이다. 의식의 개입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조경학자 강영조는 풍경이란 인간의 외부에 있는 객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전유하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라고 정의 한다. 그 관계의 핵심에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 있다. 또 풍경 그 자체의 실존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풍경 전유 방법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한다. 

[초원] [검은 숲] [어떤 날] [하늘 한 조각]등의 제목에서 암시되는 바처럼 이경의 그림은 풍경화의 일종이다. 이경의 풍경화는 이미지의 홍수로 표현되는 현대의 미디어 환경에서 존재 가능한 풍경화의 한 갈래를 보여준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구체적인 장소성이 누락되어 있다. 세계 그 자체는 가장 최소화 지점으로 환원되고 풍경감상자와 ‘세계와의 관계’가 전면에 부각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풍경감상자와 세계의 관계는 풍경 감상의 기점인 점경인물의 설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풍경의 구체성과 점경인물이 모두 소멸되고, 세계와의 관계 자체 즉 풍경감상 자체가 가장 중요한 테마로 부각된다.

작가가 내세우는 전시의 제목들은 구체성이 소멸된 풍경감상자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2006년 [파라다이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가진 이후 이경의 관심사는 여전히 파라다이스이다. 누가 낙원에 가보았는가? 혹은그곳에 갔다가 돌아와서 낙원의 모습을 전하는 사람이 있던가? 노자와 장자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야기이다. 어느시대나 낙원의 모습은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가 발견한 낙원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일상의 한 조각이거나인터넷을 통해서 본, 가 보지 못한 먼 나라의 풍경이다. 풍경감상자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기에 너무 편협하거나체험한 적이 없는 공간들이다. 풍경의 구체성이 부차시되고 풍경에 대한 감상, 세계와의 관계가 전면에 부각되는 이유이다. 낙원의 구체성은 사라졌으나 낙원에 대한 갈망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이경이 풍경을 전유하고 정립하는 방법은 바로 색채이다. 잘 정돈된 화면은 여러가지 색채의 병렬과 조화 속에서 풍경의 느낌을 전하고 있다. 멀리서보면 가로의 색띠들이 서정적인 풍경의 느낌을 전하고 있다. 작가가 뽑아내는 색채의스펙트럼은 무한하다. 인간의 감정 역시 무한하다. 다만 그것을 묘사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할 뿐이다. 텍스트적 설명을 넘어서는 직관의 풍경이자 정교한 정서의 풍경이다. 즉 이번 영은미술관 전시의 제목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평등한 매력’을 가진 색채들의 조화로운 세계가 작가가 느낀 파라다이스이다.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색채들이 아무런우열 없이 공존하는 공간 자체가 작가가 꿈꾸는 낙원이다. 

가까이 가서보면 그 색띠들은 작가의 붓질이 제거된 정교한 화면을 이루고 있다. 색띠들은 정교하게 모듈(module)화된 직사각형의 형태처럼 인지되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의 구조를 읽어내는 새로운 방식인 픽셀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풍경을 그리면서 연구해낸 방법, 즉 풍경에 대한 기하학적 해석의 일환이다. 기하학적인질서에 대한 탐닉은 사실 정반대로 세상의 혼란에 대한 염오를 표현한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역시 기하학적인 조화로 가득 차 있었다. ‘평등한 매력’을 가진 색띠들은 낙원에 대한 강렬한 열망의 반어적표현이다. 사람이 사라진 풍경화는 색띠들이 질서정연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비롯된 시각적인 평온함과 고요한 조화가 전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경의 정교한 화면은 강렬한 형상으로 가득 찬 대형화면이 지배하고 있는 최근 전시 상황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는지나치게 섬세해 보인다. 그러나 모두 같은 노래를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또 다른 부자유의 증표일 뿐이다. 모든 색들이 ‘평등한 매력’을 뿜어내는 것이 이경의 화면의 장점이다. 모든 그림들에게 평등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성숙함이우리 미술계의 장점이 되길 바란다.

2007 © 이진숙(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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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scination of equilibrium – Solo Exhibition, Youneun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07